괜찮아 괜찮아 괜찮아 (엄마의죽음, 성장서사, 힐링영화)


 

지인이 "그냥 한번 봐봐, 가벼운 거야"라고 했을 때 저는 반신반의했습니다. 포스터만 봐도 뻔할 것 같은 힐링 성장물 느낌이 물씬 풍겼거든요. 그런데 막상 보고 나서 극장 불이 켜지는 순간까지 자리를 못 떴습니다. 2025년 개봉작 '괜찮아 괜찮아 괜찮아!'는 제가 예상한 것과는 꽤 다른 영화였습니다.

엄마의 죽음, 그리고 혼자 남겨진다는 것

영화는 서울제 예술단 소속 고등학생 인영이 공연 당일 아침에 새 토슈즈가 없다며 엄마에게 짜증을 내는 장면으로 시작합니다. 홀로 인영을 키우며 바쁘게 일해온 엄마는 딸에게 늘 미안함을 안고 살아왔는데, 그 짧은 갈등이 둘의 마지막 장면이 됩니다. 예술단의 북춤 공연이 한창이던 중, 인영의 엄마는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납니다.

제가 이 영화에서 가장 오래 마음에 걸렸던 건 그다음 장면들이었습니다. 집주인에게 방을 빼달라는 요구를 받은 인영이 엄마와의 추억이 남은 물건들을 하나씩 정리하는 장면이요. 직접 겪어보니 이사라는 게 단순히 짐을 옮기는 일이 아니라, 살았던 시간을 해체하는 일이라는 걸 압니다. 어릴 적 제가 처음 이사 가던 날 느꼈던 그 묘한 상실감이 화면 너머에서 그대로 전해져 왔습니다. 인영은 울지도 않고 야무지게 물건을 팔아 생활비를 마련하는데, 그 씩씩함이 오히려 더 마음을 흔들었습니다.

고아(孤兒)가 된 인영에게는 곧 법적 후견인(法的後見人) 문제가 따라붙습니다. 법적 후견인이란 미성년자의 신상과 재산을 법적으로 보호할 의무를 지는 사람을 뜻하는데, 인영처럼 부모가 없고 다른 보호자도 없는 경우에는 보호 시설 입소가 원칙입니다. 강서구청 아동청소년과 직원이 예술단 감독 설아를 찾아와 이 사실을 통보하는 장면은, 슬픔보다 행정적 냉담함이 앞서는 현실을 담담하게 보여줍니다. 실제로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국내 보호대상아동의 상당수가 시설이 아닌 가정형 보호(위탁·입양 등)를 필요로 하지만 여건이 뒷받침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인영의 상황이 결코 영화 속 설정만은 아닌 셈입니다.

갈 곳 없는 인영은 예술단 건물에 몰래 숨어 지내다 야근 중이던 설아에게 발각됩니다. 설아는 차갑고 엄격한 감독이지만, 결국 인영을 자신의 집 지하실에 들입니다. 이 선택 하나가 영화의 나머지 절반을 이끌어갑니다.

성장서사를 이끄는 두 사람, 설아와 인영

처음 설아의 집에 들어온 인영이 건강식 위주의 식단을 보며 "마녀 밥상"이라고 구시렁대는 장면이 있습니다.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감독과 단원이라는 수직적 관계에서 이 정도 티격태격이 가능하다는 게, 오히려 두 사람의 관계가 앞으로 얼마나 변할 수 있는지를 암시하는 장치처럼 느껴졌거든요.

설아는 완성도 높은 공연을 위해 개인 오디션(Individual Audition)을 선언합니다. 개인 오디션이란 단원 전체가 아닌 개인별로 실력을 평가해 무대 출연 여부를 결정하는 방식으로, 예술단에서는 드물지 않지만 단원들에게는 상당한 심리적 압박을 줍니다. 조 선생이 탈락 학생들의 상처를 우려하자 설아는 "준비되지 않은 상태로 무대에 올릴 수 없다"고 잘라 말합니다. 차갑게 들리지만 저는 이 대사에서 설아 나름의 진심이 보였습니다. 무대라는 공간이 얼마나 가혹한 곳인지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의 말이랄까요.

설아의 과거에는 정란이라는 인물이 있습니다. 연하라는 이름으로 함께 활동했던 정란은 돈이 없어 예술단을 그만뒀고, 작년에 사고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과거 모임에서 친구들이 "나리가 어린 설아를 닮았다"고 말하는 장면은 짧지만, 설아가 왜 인영에게 특별한 감정을 품게 되는지 실마리를 줍니다. 제 경험상 이런 복선은 한 번에 이해되기보다 영화가 끝나고 나서야 퍼즐이 맞춰지는 경우가 많은데, 이 영화도 그랬습니다.

인영이 찢어진 가족사진을 발견하고 동욱의 약국을 찾아가 엄마 생각에 울음을 터뜨리는 장면은, 영화 전반부의 씩씩함이 사실은 억누른 감정이었다는 걸 한번에 보여줍니다. 잠든 인영에게 설아가 "왜 무용을 하느냐"고 묻고, 인영이 "엄마가 좋아해서 시작했는데 이제 그만둘 것 같다"고 답하는 장면. 그리고 설아가 "춤이 좋으면 후회하지 않을 만큼 노력해보라"고 말하는 장면. 인영이 설아에게 "왜 그렇게 열심히 사느냐"고 되묻자 설아도 "엄마가 좋아해서"라고 대답합니다. 이 짧은 교환 안에 영화가 하고 싶은 말이 전부 들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영화 속 무용 장면들은 단순한 볼거리가 아닙니다. 안무(choreography)란 몸의 움직임을 통해 감정과 서사를 전달하는 예술적 언어인데, 이 영화에서는 인영의 실력이 향상될수록 무대 중앙에 가까운 자리를 맡게 되는 방식으로 그녀의 내면 성장을 시각적으로 표현합니다. 부채춤, 북춤 같은 전통 무용 레퍼토리(repertoire)도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장면마다 인물의 심리 상태와 맞물려 있어, 무용에 관심 없는 관객도 자연스럽게 흡인됩니다. 레퍼토리란 무대에 올릴 수 있도록 완성된 작품 목록을 의미합니다.

다만 솔직히 아쉬웠던 부분도 있습니다. 설아의 과거사, 즉 정란의 죽음이 현재의 설아에게 어떤 죄책감과 그리움으로 작용하는지가 충분히 그려지지 않았습니다. 그 연결 고리가 더 명확하게 드러났다면 설아라는 인물의 행동 동기가 훨씬 설득력 있게 느껴졌을 것입니다. 제 경험상 인물의 과거를 다루는 장면은 조금 길어지더라도 관객이 납득할 만큼 보여주는 편이 낫습니다.

힐링영화라는 장르가 나리에게 하는 일

나리라는 캐릭터를 어떻게 볼 것인가, 이게 이 영화를 재미있게 보는 또 다른 축입니다. 처음에는 전형적인 라이벌 캐릭터처럼 보입니다. 센터 자리를 뺏길까 봐 불안해하고, 인영이 장학금으로 예술단에 다닌다는 사실을 약점처럼 꺼내 들고, "엄마가 없어졌으면 좋겠다"는 말을 아무렇지 않게 내뱉습니다. 그 대사가 나오는 순간 관객석에서 탄식 소리가 들렸을 정도입니다.

그런데 나리에게는 폭식 후 구토를 반복하는 비밀이 있습니다. 섭식장애(eating disorder)란 음식 섭취에 대한 극심한 통제 욕구나 두려움으로 인해 발생하는 심리적·신체적 질환으로, 특히 외모와 체형에 민감한 예술 분야 종사자들 사이에서 높은 비율로 나타납니다. 한국보건산업진흥원의 자료에 따르면 무용·체조·피겨 등 심미적 수행 예술 분야의 청소년에서 섭식장애 유병률이 일반 청소년에 비해 유의미하게 높은 것으로 보고됩니다. 나리의 행동이 단순한 악의가 아니라 내면에서 무너지고 있는 아이의 방어 기제(defense mechanism)임을 영화는 조용히 암시합니다. 방어 기제란 심리적 불안이나 불편함을 줄이기 위해 무의식적으로 작동하는 심리적 반응 방식입니다.

인영과 나리의 갈등이 결국 몸싸움으로 번지는 장면은 꽤 날카롭습니다. 인영이 "솔직하지도 못하면서 유치한 트집만 잡는다"고 직격하는 순간, 나리가 분노하는 건 그 말이 틀렸기 때문이 아니라 맞았기 때문이라는 게 느껴집니다. 이 영화에서 이 장면이 가장 인상 깊었다고 하면 의외일 수도 있지만, 저는 갈등이 해결되는 과정보다 갈등이 정직하게 터지는 순간이 더 기억에 남았습니다.

다만 아쉬운 점은, 몸싸움까지 갔던 두 사람이 어떤 계기로 진정한 친구가 되는지 그 과정이 다소 급하게 처리된 느낌이 든다는 것입니다. 갈등의 해소 과정이 더 구체적으로 그려졌다면 마지막 장면의 감동이 배가됐을 것입니다. 힐링 성장물이라는 장르적 기대치를 고려하면 더욱 그렇습니다.

영화가 이 장르에서 잘 해낸 것들을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1. 인물의 감정을 표정과 눈빛, 그리고 무용 동작으로 겹겹이 표현해 대사 없이도 전달되는 장면들이 많습니다.
  2. 설아와 인영이라는 두 주축 캐릭터의 심리 변화가 억지스럽지 않고 단계적으로 그려집니다.
  3. 나리를 단순 악역이 아닌, 자신의 두려움을 공격성으로 포장하는 입체적 인물로 묘사했습니다.
  4. 춤이라는 매체를 감정 표현과 서사 전개의 도구로 효과적으로 활용했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괜찮아 괜찮아 괜찮아 영화는 어떤 관객에게 잘 맞나요?

A. 가족의 죽음이나 상실을 경험한 분들, 혹은 힘든 시기를 홀로 버텨본 경험이 있는 분들에게 특히 와닿을 영화입니다. 무용이나 예술 분야에 관심이 있는 관객이라면 공연 장면들이 주는 시각적 즐거움도 쏠쏠합니다. 다만 갈등 해소 과정이 다소 빠르게 처리되는 편이라, 촘촘한 서사보다는 감성적 울림을 기대하며 보시는 게 더 잘 맞을 것 같습니다.

Q. 영화 속 나리의 폭식증 묘사는 어느 정도로 나오나요?

A. 직접적이고 자극적인 방식으로 묘사되지는 않습니다. 나리가 화장실에서 나오는 장면이나 친구들이 나리의 비밀을 언급하는 대화 정도로, 간접적으로 암시되는 수준입니다. 오히려 그 절제된 묘사 덕분에 나리라는 캐릭터의 고통이 과장 없이 전달된다고 느꼈습니다.

Q. 설아가 인영을 집에 데려오는 이유가 납득이 가나요?

A. 영화는 설아의 선택을 과도하게 설명하지 않습니다. 과거 정란(연하)이라는 인물과의 연결 고리가 암시되긴 하지만, 그 부분이 충분히 그려지지는 않아서 처음에는 다소 갑작스럽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영화 전체를 다 보고 나면 설아의 선택이 그녀 나름의 방식으로 과거를 대면하는 행위였다는 인상이 남습니다.

Q. 무용을 몰라도 영화를 즐길 수 있나요?

A. 충분히 즐길 수 있습니다. 저도 무용에 대한 전문 지식 없이 봤는데, 부채춤이나 북춤 장면이 단순한 공연 장면이 아니라 인물의 심리 변화를 보여주는 방식으로 연출되어 있어 직관적으로 이해됩니다. 춤에 대한 배경지식보다는 인물의 표정과 동작의 변화에 집중하며 보시면 됩니다.

영화가 끝나고 나오면서 스스로에게 "괜찮아"라는 말을 한 번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영화는 상처받은 사람들에게 억지로 위로를 건네지 않습니다. 그냥 옆에 앉아서 같이 있어주는 방식으로 이야기를 풀어냅니다. 완벽한 영화는 아니지만, 그래도 본 것을 후회하지 않았습니다. 조용히 힐링이 필요한 날, 한 편 보시기를 권합니다.

--- 참고: https://youtu.be/9ZSVpoaleeI?si=kWT2-wlYJPbgAaK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