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 (간경변, 요양원, 삶의 태도)


 

솔직히 저는 이런 류의 영화를 잘 안 봤습니다. 죽음이 나오는 이야기는 왠지 무겁고, 보고 나서 한동안 기분이 처질 것 같아서요. 그런데 영수와 은희의 이야기를 보고 나서 며칠째 머릿속에서 지워지지가 않습니다. 화려한 삶을 뒤로하고 불치병 환자들의 요양원으로 들어간 남자, 그리고 폐가 40%밖에 남지 않았는데도 "아직 쓸만하다"고 웃는 여자. 그 두 사람의 이야기입니다.

클럽 사장이 요양원에 간 이유, 짐작이 됐습니다

영수가 처음 등장할 때 저는 솔직히 크게 공감하지 못했습니다. 클럽을 운영하며 방탕한 생활을 이어가다 갑자기 모든 것을 정리하는 모습이 드라마틱하게 느껴졌거든요. 그런데 조금 더 들여다보니, 그 선택이 꼭 대단한 용기의 산물이 아닐 수도 있겠다 싶었습니다. 몸이 먼저 무너졌으니까요.

영수가 받은 진단은 간경변(肝硬變)입니다. 간경변이란 오랜 음주나 바이러스 감염 등으로 인해 간 조직이 딱딱하게 굳어가는 만성 질환으로, 상당 부분 진행되기 전까지는 자각 증상이 거의 없어 '침묵의 장기'라는 별명이 붙은 간의 특성상 발견이 늦는 경우가 많습니다. 실제로 대한간학회 자료에 따르면(출처: 대한간학회) 간경변 환자의 상당수는 증상이 뚜렷해진 뒤에야 병원을 찾는다고 합니다. 영수가 극심한 통증을 느끼고 나서야 행동에 나선 것도 그런 맥락이었겠지요.

그가 주변에 "유학을 간다"고 둘러대며 시골 요양원 '희망의 집'으로 향하는 장면에서, 저는 오히려 그 거짓말이 이해됐습니다. 화려하게 살던 사람이 불치병 요양원에 간다고 솔직히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자존심의 문제이기도 하고, 주변을 걱정시키기 싫은 마음이기도 했을 겁니다. 그 복잡한 감정이 "유학"이라는 두 글자에 다 담긴 것 같았습니다.

은희가 웃는 이유를 저는 한참 뒤에야 알았습니다

은희가 처음 등장했을 때, 저는 그녀가 스태프인 줄만 알았습니다. 8년째 요양원에서 환자들을 돌봐온 사람이니까요. 그런데 그녀 역시 중증 폐질환(重症 肺疾患) 환자였습니다. 중증 폐질환이란 폐 기능이 정상 수준 이하로 심각하게 저하된 상태를 통칭하는 말로, 일상적인 활동에도 호흡 곤란이 따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은희는 폐 기능이 40%밖에 남지 않은 상태였습니다.

그런데 그녀는 그 사실을 "아직 쓸만하다"며 농담처럼 말합니다. 처음엔 강한 척하는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영수와 함께하는 시간이 쌓여갈수록, 그 웃음이 억지가 아니라는 걸 알게 됐습니다. 그녀는 진심으로 오늘 하루를 소중하게 여기는 사람이었습니다. 제 경험상 이런 태도는 철학책에서 읽은 것처럼 거창한 깨달음이 아닙니다. 몸이 매일 경계선을 보여주는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감각 같았습니다.

은희가 영수에게 먼저 다가가 운동을 가르쳐주는 장면도 인상 깊었습니다. 의욕을 잃은 사람 곁에 그냥 있어주는 것, 설교 없이 옆에서 함께 움직여주는 것. 그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저는 잘 압니다. 말로는 쉬워 보여도, 실제로 그렇게 할 수 있는 사람은 드물거든요.

두 사람이 함께 시간을 보내며 가까워지는 과정에서, 은희가 삶을 대하는 방식을 정리해 보면 이렇습니다.

  1. 오늘 하루의 행복을 내일의 계획보다 우선시한다.
  2. 자신의 한계를 숨기지 않되, 그것으로 타인을 무겁게 하지 않는다.
  3. 먼저 다가가는 쪽이 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4. 죽음을 부정하지 않으면서도 삶을 포기하지 않는다.

이 네 가지가 스크린 안에서만 존재하는 이야기가 아니라는 게, 이 작품이 오래 남는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석구의 죽음이 오히려 더 슬펐던 이유

룸메이트 석구의 이야기는 이 작품에서 가장 아프게 박힌 장면 중 하나입니다. 건강검진 결과에 절망한 그가 약을 버리고, 담배를 요구하며 영수에게 화풀이하는 모습은 솔직히 이해가 됐습니다. 억울한 거죠. 죽어가는 사람이 죽는다는 사실에 화를 내는 건, 지극히 인간적인 반응입니다.

그런데 그 다음 날, 석구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을 영수가 발견합니다. 제가 예상 밖이었던 건 그 뒤에 나오는 요양원 사람들의 반응이었습니다. 침착하게 상황에 대처하고, 무너지지 않고 일상으로 돌아갑니다. 처음엔 냉정하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그건 냉정함이 아니라 '죽음과 함께 사는 사람들의 담담함'이었습니다. 그 담담함이 오히려 더 큰 슬픔으로 다가왔습니다.

영수가 죽음을 두려워하며 흔들릴 때, 은희가 곁을 지켜주는 장면에서 저는 완화의료(palliative care)라는 개념을 자연스럽게 떠올렸습니다. 완화의료란 완치가 어려운 환자에게 남은 삶의 질을 높이는 데 집중하는 의료 접근법으로, 신체적 고통 완화뿐 아니라 심리적, 사회적 지원을 포함합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완화의료를 생명을 위협하는 질환에 직면한 모든 환자와 가족의 권리로 명시하고 있습니다(출처: WHO). 은희가 8년째 그 자리를 지키며 환자들을 돌봐온 것 자체가, 어떤 의미에서는 완화의료의 실천이었을지도 모릅니다.

영수가 밉고, 또 이해됐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영수가 서울로 돌아가는 장면에서 정말 화가 났습니다. 자신을 살린 사람을 홀로 남겨두고 과거의 화려함으로 돌아가는 모습이 너무나 이기적으로 보였거든요. 수연의 눈물에 흔들리고, 다시 술과 담배를 시작하고, 은희의 전화를 피하는 장면들은 보면서 답답함이 절정에 달했습니다.

그런데 한 발짝 물러서서 보면, 영수의 행동이 완전히 납득 불가능한 건 아닙니다. 간 수치(肝 數値)가 정상으로 돌아왔다는 진단을 받은 순간, 사람은 자연스럽게 '다시 살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간 수치란 혈액 검사에서 측정하는 ALT, AST 등의 효소 수치로, 간의 손상 정도와 회복 여부를 판단하는 핵심 지표입니다. 수치가 정상 범위로 돌아왔다는 건 의학적으로 긍정적인 신호지만, 그게 곧 완치를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영수는 그 기쁨을 계기로 마치 이전의 삶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착각에 빠져버립니다.

이 지점에서 영수와 은희의 삶의 철학이 정면으로 충돌합니다. 은희는 오늘 하루의 행복이 전부라고 생각하고, 영수는 노후 자금과 미래를 걱정합니다. 둘 다 틀린 말은 아닙니다. 그런데 그 가치관의 차이가, 같은 공간에서 살던 두 사람을 결국 갈라놓습니다. 제 생각엔 영수의 내면 갈등이 조금 더 깊이 다뤄졌다면 그의 선택이 더 설득력 있게 느껴졌을 것입니다. 화려한 과거에 대한 미련과 은희와의 약속 사이에서 더 많이 흔들리는 모습이 보였더라면, 관객도 그를 더 안타깝게 봤을 테니까요.

마지막에 은희가 온 힘을 다해 뛰다가 쓰러지는 장면은, 오랫동안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았습니다. 그 장면이 분노인지, 절망인지, 아니면 마지막까지 살아있음을 증명하려는 것인지 저는 아직도 정확히 모르겠습니다. 그게 이 이야기가 가진 힘인 것 같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간경변은 완치가 가능한 병인가요?

A. 간경변(肝硬變)은 진행 단계에 따라 다릅니다. 초기에 원인을 제거하고 치료하면 진행을 늦추거나 부분적으로 회복이 가능하지만, 많이 진행된 경우에는 간 이식 외에 근본적인 완치가 어렵습니다. 영수처럼 간 수치가 정상으로 돌아왔다 해도, 생활 습관을 완전히 바꾸지 않으면 재발 위험이 높다는 점이 중요합니다. 혹시 주변에 비슷한 상황의 분이 계시다면, 전문의와 지속적인 상담을 이어가시는 걸 권합니다.

Q. '희망의 집' 같은 요양원에서 환자들이 연애를 하는 경우가 실제로 있나요?

A. 실제 요양시설이나 호스피스 병동에서 입원 환자들 사이에 감정적 유대가 생기는 경우는 충분히 있습니다. 죽음이 가까운 환경에서 오히려 감정이 더 솔직해지고 빠르게 가까워지는 경향이 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다만 작품에서도 원장이 걱정하듯, 두 사람 모두 환자인 경우 심리적·신체적 부담이 가중될 수 있어 주변의 세심한 지원이 필요합니다. 이 관계가 단순한 로맨스를 넘어 서로의 삶에 의미를 부여한다는 점에서, 이 이야기가 울림을 주는 것 같습니다.

Q. 은희처럼 "오늘에 집중하는 삶"을 실제로 실천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A. 이게 사실 가장 어려운 질문입니다. 은희의 태도가 특별해 보이는 이유는 그녀에게 선택지가 많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 제한된 상황에서도 긍정을 놓지 않는 의지가 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현재 중심적 사고(mindfulness)라고 부르며, 과거나 미래가 아닌 지금 이 순간에 의도적으로 주의를 기울이는 훈련입니다. 거창하게 시작할 필요는 없고, 오늘 하루 중 딱 한 가지만 "이걸 느끼기 위해 오늘을 보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을 찾아보는 것부터 시작해보시면 어떨까요?

Q. 수연이라는 인물이 왜 영수를 다시 찾아온 건가요?

A. 작품 안에서 수연의 내면이 충분히 설명되지 않는다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제 생각에 수연은 영수가 건강을 회복했다는 소식을 듣고 다시 돌아온 것으로 보이는데, 그녀가 영수를 진심으로 사랑했는지 아니면 잃고 싶지 않은 존재로 붙잡으려 했는지는 모호하게 남습니다. 이 모호함이 수연을 단순한 '방해꾼'이 아닌 현실적인 인물로 만들기도 하지만, 동시에 삼각관계의 긴장감을 충분히 살리지 못한 아쉬운 지점이기도 합니다.

이 이야기가 던지는 질문은 하나입니다. 당신은 오늘을 살고 있습니까, 아니면 내일을 걱정하며 오늘을 흘려보내고 있습니까. 영수처럼 화려한 과거를 그리워하든, 은희처럼 오늘에 충실하든, 그 선택은 누구나 매일 반복합니다. 저도 이 이야기를 보고 나서, 하루를 조금 더 의식적으로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완성도 높은 이야기가 아니더라도, 이렇게 오래 생각하게 만드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가치 있는 작품입니다. 직접 보시면서 영수와 은희 중 자신이 더 닮은 쪽이 누군지 한번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 참고: https://youtu.be/qpjEyTkQJBg?si=Dk3ag55wRyJHkoU8